본문 바로가기

여행/해외여행

쿠바의 수도 아바나

 

 

쿠바의 수도 아바나는 스페인어로는 라아바나 또는 영어로 하바나라고 하며 쿠바의 수도로 공식 이름은 산 크리스토발 데 라 아바나이다. 주로 돈이 많은 사람들과 상류계급이 살았던 화려한 주택들은 박물관과 학교로 종종 이용되곤 하였으며 체 게바라 사적관은 개인 기념관이자 공산정권의 정치적 목적으로 사용되곤 하였다. 체 게바라는 쿠바의 혁명가이다. 아바나는 해안에 자리잡고 있어서 휴양지로 유명한 곳이다.

 

 

아바나의 시작은 정복자 디에고 벨라 스케스가 1514년 쿠바 섬의 남쪽 바타바노만 쪽에 현재 스루히에도로 데 바타바노 근처에 거주지를 세운 시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현재 위치인 멕시코만 쪽으로 도시가 올며진 것은 1519년이며 1553년 이전의 산티아고 데 쿠바 대신 쿠바 총독령의 수도가 되었다. 1519년부터 항구를 중심으로 도시를 쌓아 갔다. 아바나는 스페인의 신대륙의 식민지 경영의 중심지로 그리고에 무역의 중요한 중계지로 발전했다.

 

 

쿠바는 프랑스, 영국, 네덜란드의 해적의 공격을 받는 일이 잦았다. 1537년에는 프랑스 해적에 의해 습격이 이루어져 불탔고, 1553년 및 1555년에도 약탈을 당하는 등 많은 피해를 입었다. 따라서 아바나는 후에루사 요새, 푼타 요새 ,모로 요새 등 많은 요새가 만들어졌고 군사 도시로서의 면모가 정비되었다. 1713년 의트 레흐트 조약에 의해 영국과 아메리카 무역의 참여가 제한되면서도 승인이 되면서 히우 해적을 대신해 밀무역이 성행하였다.

 

 

18세기 후반에 쿠바의 설탕 산업이 확대가 되어 아바나는 쿠바의 근대적 설탕 제조업의 중심지가 되었다. 19세기 스페인 식민지에서 독립했던 쿠바는 옹업 경제를 활성화 시키기 위해 많은 이민자와 흑인 노예가 유입되어 다민족 사회가 형성되었다. 1898년 아바나 항구에서 미국 해군의 전함 메인이 침범하여 미국과 스페인의 전쟁이 발단이 되었다. 아바나는 1902년 쿠바공화국의 독립을 선포하고 이곳은 쿠바의 수도가 되었다.

 

 

1959년 쿠바 혁명으로 인한 바티스타 정권의 붕괴와 공산당 혁명 정권 수립 이후에 쿠바의 수도 아바나의 위치는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아바나 구 시가지는 전성기의 스페인 콜로니얼 양식이 완전하게 보존되고 있으며 1982년에 구시가지가 세계 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와 자매 도시 관계를 맺고 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만년을 여기에서 보내고 명작 노인과 바다를 여기에서 집필하고 완성하였다.

 

구 시가지의 서쪽에 잇는 광대한 신도시 지구는 제1차 세계대전 후 미국과 쿠바의 자본가와 바티스타 정권 정부 요원의 고급 주택지로 개뱔된 지역으로 넓은 도로와 현대적인 고층 빌딩이 나란히 서 있다. 구 시가지와 신 시가지 사이에는 혁명 광장이 있다. 소규모 차이나 타운이 존재하고 있으며, 중국계 쿠바인이 살고 있고, 중국 식당이 몇 개 있다. 아바나를 둘러싸고 있는 긴 방파제를 말레꼰이라 하는데 도시 풍경과 방파제가 어우러진 유명한 아바나의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