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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해외여행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생을 마친 세인트헬레나 섬

 

 

세인트헬레나는 남대서양에 위치하고 있으며 나폴레옹이 최후를 맞은 곳이다. 나폴레옹이 최후를 맞을 곳으로 세인트헬레나가 선택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남대서양에 떠 있는 외딴섬은 가장 가까운 육지라 해도 1,200km나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2010년 운항 시작을 목표로 공항 건설을 위한 자금을 유치 중이지만 현재로서는 세인트헬레나 호를 이용하는 방법뿐이다. 케이프타운에서 승선하여 나미비아의 스켈레톤코스트를 따라 이틀 낮과 밤을 올라간 뒤 석양을 향해 망망한 대서양으로 나가 꼬박 닷새를 항해하면 비로소 영국인의 세계에 도착하게 된다.

 

 

황량하리만치 거친 붉은 화산암으로 이루어진 해안선은, 내륙으로 들어가면 푸르른 녹음과 어지러울 정도로 야트막한 언덕이 많은 아열대 풍경ㅇ로 바뀐다. 높은 곳에 올라가는 것을 좋아하는 이라면 작고 아늑한 수도 제임스타운에서 절벽 위로 솟아 잇는 '야곱의 사다리'의 750개 계단을 올라가보자. 어부들이 바닷가재를 낚는 데 쓰는 통발을 손질하는 것을 구경하며 느긋하게 오후를 즐기는 편을 좋아할지도 모르겠다.

 

 

오지라고 하지만 놀랄 정도로 문명화된 곳이다. 유럽으로 돌아갈 때에는 이틀 동안 배를 타고 심지어 세인트헬레나보다 더 외딴 어센션 섬으로 가서 군용기를 타면 잉글랜드의 브라이즈노턴에 내릴 수 있다. 1676년 부터 에드먼드 핼리가 이 곳에 천문대를 설치하고 천체 관측의 거점으로 삼았다. 1810년 이후에는 동인도 회사의 광동 무역 기항지로 쓰이게 된다.

 

 

세인트헬레나 섬은 아프리카 대륙 서안에서 2,800km 떨어져 있다. 수에즈 운하가 완성되기 이전까지 인도양으로 향하는 항로의 요충지였다. 세인트헬레나 섬은 화산섬으로 820m인 다이애나 산이 최고봉이다. 섬의 주위에는 절벽이 많이 형성되어 있다. 또한 섬 대부분이 화산암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러 암좌와 바위섬이 해안가에 나타나기도 한다. 20여 개 이상의 암초와 작은 섬이 있으며 거의 해안에서 1km이내에 있다. 중심부에는 숲이 우거져 있으며 새천년 수풀가꾸기 프로젝트로 조성된 것도 많다. 비바람과 폭풍이 늘 몰아치는 고온다습한 기후이다.

 

 

세인트헬레나 섬은 아프리카 서남부의 대서양에 있는 영국령의 섬으로 1502년 포르투갈 인 주앙다노바가 인도에서 돌아오는 길에 처음 발견하였으며, 포르투갈령, 네덜란드령을 거쳐 1673년 영국 동인도 회사의 소유가 되었고 1834년 영국 국왕의 직할 식민지가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때에는 영국의 해군 기지였다. 로마의 코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머니인 헬리나의 이름을 따서 붙여진 지명이다. 중심 도시는 제임스타운이다. 농업과 목축이 성하며 어센션 섬과 함께 원거리 통신의 중계지 역할을 하고 있다.

 

 

1657년 올리버 크롬웰은 영국 동인도 회사에 이 섬의 행정권을 인정하였다. 동인도 회사는 이 섬의 요새화와 식민지화를 결정하고 1659년에 초대 총독 존다톤이 부임하였다. 이로써 세인트 헬레나는 버뮤다에 이어 두 번째로 오래된 식민지가 되었다. 1660년 왕정 복고 이후 동인도회사는 국왕의 인정서를 얻어 섬의 요새화와 식민지화를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 동인도회사에 의해 1658년 건설된 요새가 현재의 수도인 제임스 타운이 되는데 이 이름은 당시의 요크공, 후일 제임스 2세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엘바 섬을 탈출한 후 워털루 전투에서 패배하자 빈 회의는 그의 신병 처리를 영국에 일임하였다. 영국은 나폴레옹의 망명 수용을 거부하고 보호를 명멱으로 세인트 헬레나 섬에 가두기로 하였다. 나폴레옹은 1815년 10월 세인트 헬레나에 도착, 1821년 5월에 사망할 때까지 섬 종앙의 롱우드 하우스에서 살았다. 영국은 허드슨 로 총독에게 나폴레옹의 감시를 지시했다. 허드슨 로는 나폴레옹에게 온갖 가혹행위를 자행했으며 심지어 나폴레옹이 병으로 몸져눕자 나폴레옹의 주치의를 영국 본토에 강제로 내보냈다.

 

 

 

<어떤 금전적 지원도 받지않았으며 단순 정보제공을 위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