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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해외여행

국제 분쟁의 영향을 받고 있는 팔레스타인

 

 

고대 그레데 섬에서 가나안 땅으로 건너온 블레셋 족속, 혹은 블레셋 족속의 땅이란 의미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성경에서는 '가아안', '히브리 땅', '약속의 땅' 등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이 지명은 히브리어로 블레셋 사람이라는 뜻의 '펠리쉬티'등으로 불렸다. 그리스 역사가 헤르도투스가 불레셋 사람의 나라라는 뜻의 '팔라이스티네'로 부른 것이 '팔레스타인'이란 명칭의 기원이 되었다. 팔레스타인은 비옥한 초승달 지역의 끝자락에 위치하여 중근동에서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점에 군사적, 전략적 요충이어서 항시 국제 분쟁의 영향을 받아야 했다.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한 지중해의 동해안 일대를 가리키는 지역으로 지중해를 따라 좁고 긴 평야가 펼쳐지고, 동쪽으로 갈수록 지대가 높아져 중앙은 구릉 지대이다. 가나안이라 부르던 지역으로 기원전 12세기에 팔레스타인 인이 지배하게 되어 팔레스타인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기원전 11세기에 해브라이 인들이 이스라엘 왕국을 건설하였으나 솔로몬의 사후 이스라엘과 유다로 분리되어 이스라엘은 아시리아에, 유다는 신바빌로니아에 멸망당하였다. 기원전 4세기에는 알렉산더 대왕의 통치를 받았으며 기원전 1세기에 로마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이후 이슬람 교도들의 지배를 받았으며, 제1차 세계대전 후에는 영국의 위임통치령이 되었으나 세계 대전 기간 중 팔레스타인의 처리 문제를 두고 영국이 두 가지 모순된 선언을 발표함으로써 팔레스타인을 둘러싸고 아랍, 유대인 사이에 심한 대립을 빚게 되었다.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하여 1948년 이스라엘을 건국함으로써 여러 차례 중동 전쟁이 발생하였다. 1967년 제3차 중동 전쟁에서 승리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전역과 부근 여러 나라의 영토 일부를 점령하였다.

 

 

여러 차례의 중동 전쟁으로 발생한 팔레스타인 난민의 수는 300만 명이나 되는데 이들은 조상들이 살던 땅으로 들어가고자 하였다. 이에 따라 1964년 이후 그들은 팔레스타인 해방 기구인 PLO를 모체로 삼고 게릴라 조직을 만들어 팔레스타인 행방 운동에 나섰다. 1975년 국제 연합은 팔레스타인의 민족 자결권과 PLO를 준국가로 인정하는 결의안을 채택하였다. 1993년 9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간에 평화 협정이 맺어져 가자와 팔레스타인 자치 기구를 설립할 것을 결정하였다. 현재 팔레스타인 지역에 대한 분쟁은 해결되지 못한 상태이다.

 

 

 

<어떤 금전적 지원도 받지않았으며 단순 정보제공을 위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