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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해외여행

신성한 도시 이스라엘과 파레스타인의 분쟁지역 예루살렘

 

 

예루살렘은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이슬람교가 탄생한 도시였으며 서구 역사에서 매우 중요하고 신성시되는 곳이다. 아라비아인은 이 도시를 신성한 도시라는 뜻의 쿠드스라고 부른다.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분쟁이 끊이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지역으로, 이스라엘이 점령하고 있지만 국제법상 어느 나라의 소유도 아닌 도시이다.

 

 

이스라엘의 행정수도는 텔아비브이다, 동부는 요르단령이며, 서쪽은 1948년부터 이스라엘령이 되었으며, 1950년에 수도가 되었다. 1967년 6월 중동전쟁 이후로 유대교도, 그리스도교도, 이슬람교도가 저마다 성지로 받들고 있는 동쪽 지역도 이스라엘의 점령지가 되었다. 동예루살렘에는 사적(史蹟), 성적(聖적}이 많으며, 유태교의 통곡의 벽, 그리스도교의 성묘교회, 이슬람교의 오마르사원 등이 특히 유명하다.

 

 

예루살렘이 역사는 BC3000년대 말경 에브스라는 가나안인 거주, BC2000년대 중엽 이집트의 파라오 세력하에, BC1000년 이후에 헤브라이인 점령, 다윗왕이 에브스인을 쫓아내어 이스라엘 왕국의 수도로 삼았다. 솔로몬왕이 지금의 아크사 이슬람교사원이 있는 지점에 궁정을 지음, 지금의 바위사원인 쿠바트 앗사흐라가 있는 곳이며 다윗이 건립한 이스라엘의 하느님 제단 앞에 야훼의 성전을 건립, BC935년 이스라엘과 유대로 양분, 예루살렘은 유대의 중심지가 됨, BC586년 신바빌론의 네브카드자르 2세가 예루살렘 파괴, 바빌론으로 끌고가 BC538년 까지 억류함

 

 

페르시아 왕 키루그가 석방하여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야훼의 성전 재건, BC63년 폼페이우스의 로마군에 점령, BC37년 헤로데스왕이 이곳을 점령하고 야훼의 성전을 재건, 로마황제 베스파시아누스의 아들 디투스가 70~71년에 공격으로 헤로데스 시대의 번영이 사라지고 헤로데스가 지은 성전의 벽이 통곡의 벽이라 이름짓고 이곳을 찾아가서 통탄하는 풍습이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로마가 135년 야훼의 정전 파괴, 직속지로 삼아 유대교도들을 몰아냄, 콘스탄티누스 1세의 명령으로 그리스도의 성묘 등에 최초의 교회가 건립,

 

 

614년 사산왕조 페르시아의 호스로 2세가 비잔틴제국군을 격파, 예루살램 함락, 638년 이슬람교도의 아랍인이 함락, 팔레스타인과 시리아가 비잔틴제국에서 이탈하여 이슬람교국가가 됨, 현재 바위사원에 있는 큰 바우는 무함마드가 꿈에 대천사 가브리엘의 안내로 제7천에 있는 알라의 앞까지 갔다는 승천인 미라지의 장소로서 신성시되고 있다. 아랍인들은 솔로몬의 궁전이 있던 곳에 '아득한 회교사원인 아크사의 마스지드' 지었으며, 우마이야왕조의 칼리프 압둘 말리크때에는 다윗의 재단을 마련한 곳에 바위사원을 건립하였다. 서로 상대편의 성지를 존중하였다.

 

 

1099년 제1차 십자군의 성시 침략, 예루살렘왕국 건설, 1187년 이집트의 아이유브왕조를 건설한 살라딘이 탈환, 여러번 십자군 원정이 있었다. 이집트의 맘루크 왕조의 지배, 1516년 12월 말 오스만투르크제국의 셀림 1세가 예루살렘을 지배, 제1차세계대전 말깅[ 영국군이 점령하여 1920년부터 영국이 위임통치, 제1차 세계대전 중의 밸푸어선언에 따라 유대교도의 이민이 격중, 아랍족과 마찰을 일으키게 되었다. 1948년 필렛타인의 유대교도와 아랍 각국 사이에 전쟁, 1949년 이슬엘국이 성립, 예루살렘은 요르단고 이스라엘이 동서로 양분, 1967년 6월 제3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의 동부 점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