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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해외여행

예루살렘 통곡의 벽

 

 

평화의 기도 예루살렘 통곡의 벽은 먼 엣날 한 무리의 사람들이 이 땅에 도착해 이곳에 '평화의 도시'라는 뜻의 예루살렘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어느 날 또 다른 무리가 와서 도시를 부수고 성벽을 다시 쌓았다. 진정한 평화를 위해서라며, 전쟁과 대립으로 점철된 이곳의 역사를 묵묵히 지켜봐운 성벽은 오늘도 사람들의 통곡을 받아내고 있다. 유대민족의 상징이자 전세계의 유대인의 순례지, BC20년에 헤롯앙에 의해서 지어졌고 긴 유랑 시대에 유대인들은 해마다 한번씩 이곳에서 신전의 파괴를 한탄했다. 남자와 여가가 들어가는 입구가 따로 있고 유대인의 안식일인 토요일에는 사진을 찍지 못한다.

 

 

예루살렘은 평화의 도시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이곳이 역사는 평화와는 거리가 멀다. 기원전 10세기 다윗이 무력으로 에루살렘을 장악한 이래 에루살렘은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가 서로 자신들의 성지라 주장하며 대립해왔으며 지금도 갈등은 진행 중이다. 그래서 예루살렘 구시가지가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대에도 이곳이 어느 나라의 유산인지는 표기되지 않았다.

 

 

예루살렘 구시가지 동쪽에 통곡의 벽이 있다. 신전의 서쪽 편에 위치해있어 서쪽 벽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통곡의 벽은 유대인들과 아랍인들 사이의 오랜 분쟁거리로 남아있다. 유대인들에게 이 벽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고대 이스라엘 신전의 서쪽 벽의 일부로, "약속의 땅"인 이스라엘의 상징이지만, 아랍인들에게는 이슬람교 3대 성지인 바위 사원과 알 아크사 모스크에 속한 이슬람 성지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성벽은 주인이 바뀔 때마다 파괴와 재건의 과정을 되풀이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구약성서에 의하면 솔로몬왕은 예루살렘에 장엄하고 아름다운 성전을 세웠다고 한다. 그 후 성전은 전쟁 등으로 파괴되었으나 헤로데스 왕이 예수 그리스도 시대에 재견하였다. 통곡의 벽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데에는 두 가지 설이 전해진다. 예수가 죽은 뒤 로마군이 예루살렘을 공격하여 많은 유대인을 죽였는데, 사람들이 서로 죽고 죽이는 비극의 현장을 지켜 봐온 성벽이 밤이 되면 통탄의 눈물을 흘리기 때문이라는 것이 하나, 그리고 유대인들이 이곳에 모여 기도를 올리고 성전이 파괴된 것을 슬퍼하여 성가를 부르는 소리가 울부짖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이라는 설이 또 다른 하나이다.

 

 

통곡의 벽을 바라 본다. 돌로 쌓아올려진 성벽 자체는 그리 특별할 거시 없으나 통곡의 성벽 아래에서 기도하는 유대인들의 모습과 성벽 너머로 보이는 황금빛 이슬람 사원의 대비가 인상적이다. 긴 시간 피와 땀 그리고 눈물로 쌓아올려진 벽, 성벽에 내려앉은 거뭇한 세월의 흔적 틈새로 자라난 생기 잃은 잡초, 그 앞에 서서 나지막이 평화의 디고를 읊조린다.

 

 

<어떤 금전적 지원도 받지않았으며 단순 정보제공을 위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