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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국내여행

진산자연휴양림과 남이자연휴양림

 

 

진산자연휴양림은 충청남도 금산군 진산면 묵산리 87-3에 자리하고 있는 자연휴양림이다. 1998년 11월 개장하였고 1일 최대 수용인원은 3,000명, 최적 인원은 2,100명이다.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과 충청남도 금산군, 논산시 일대에 걸쳐 있는 대둔산도립공원의 남쪽 등산로가 시작되는 배꽃재 또는 이티재라고 불리는 곳에 있다. 대둔산은 호남의 금강산으로 불릴 만큼 기묘한 암벽이 6㎞나 이어지는 산으로 휴양림은 계곡이 깊고 산봉우리가 웅장하다. 휴양림 상단은 천연활엽수림이 산복부 이하 하단 지구는 인공조림지가 있어서 자연과 인공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

 

 

진산자연휴양림에는 계곡을 막아서 만든 물놀이장과 숲속의 집 등 숙박, 야영시설을 비롯해서, 정자, 산책로, 체력단련시설, 삼림욕장, 청소년수련원 등이 있다. 특히 하단 지구에는 임진왜란 당시 군량미를 확보하려고 호남으로 진출하려던 왜적을 이곳 계곡으로 유인, 화공으로 섬멸한 권율 장군의 공적을 기리는 이치대첩지가 자리하고 있다. 주변에 충청남도의 최고봉인 서대산을 비롯하여 남이자연휴양림, 대둔산도립공원, 태고사, 금산인삼약초시장, 칠백의총 등의 관광지가 있다.

 

 

금산 이치대첩지는 충청남도 금산군 진산면 대둔산로 191, 묵산리 산 79-34에 있는 조선시대의 전적지로 금산군과 전라북도 완주군 사이의 경계를 이루는 대둔산 남쪽 사면의 해발고도 340m의 배티재는 대둔산 중허리를 넘는 교통의 요지이다. 산골짜기가 길고 깊어 매우 험한 이 재는 임진왜란 때 골짜기에 배나무가 많아 이치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선조 25년 1592년 임진왜란 때 고바야카와 다카카게가 거느린 2만 병력의 왜군이 경상동와 충청도를 쉽쓴 뒤 군량미 확보를 위해 호남평야로의 진출을 목적으로 이 배티재를 넘으려 하다가 권율에게 대패한 지역이다

 

 

대둔산도립공원의 대둔산은 호남의 소금강이라 불리고 이 산의 정상인 878m의 마천대를 비롯하여 사방으로 뻗은 여러 산줄기가 어우러져  칠성봉, 장군봉 등 멋진 암봉을 이루고, 삼선 바위, 용문골의 장군봉, 칠성봉, 금강통문의 동심암, 금강암, 약스터, 삼선암, 왕관암, 마천대 등 사방으로 기암괴석과 수목이 한데 어우러져 산세가 수려하다. 마천대에서 북쪽 능선을 따라 낙조대에 이르는 구간은 특히 장관으로 이 낙조대에서 바라보는 일출, 일몰 광경이 일품이다. 1977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케이블카, 길이 50m의 금강 구름다리 등이 설치되어 있다.

 

 

금산 칠백의총은 임진왜란 때 순절한 의병장 조헌 등 700의사의 유골을 안치한 묘소이다. 충청남도 금산군 금성면 의총리에 있는 조선 임진왜란 때 왜군과 싸우다가 순절한 700의사의 무덤이다. 1592년에 조헌의 의병과 영규의 승병이 합군하여 청주성을 수복하고 700인의 의병을 이끌고 금산으로 진격, 고바야카와의 막강한 왜군과 혈전을 벌여 전원이 순절하였다. 4일 수인 22일 조헌의 제자 박정량, 전승업 등이 시체를 거두어 하나의 무덤을 만들고 칠백의총이라 하였다. 1970년 국가에서는 경역을 확장하고 종용사, 기념관, 순의탑 등을 새로이 지어 사적으로 지정

 

 

 

남이자연휴양림은 금산군 남이면 건천리에 자리하고 있으며, 1996년 8월 1일에 개장하였고, 이일 수용인원은 3,000명, 최적 인원은 2,200명이다. 금산군청 산림과에서 관리하고 있다. 금남정맥 자락 해발 759m의 선야봉 기슭 느티골에 있으며, 천연 활엽수림에 고로쇠 나무가 폭넓게 분포하고 있다. 느티나무가 많아 느티골이라고도 불리고, 산세가 좋고 기암괴석과 폭포수 등 자연 경관이 수려하며, 사람의 손길이 거의 닿지 않은 원시림에 가까운 숲이다.

 

 

남이자연휴양림에는 숲속의 집, 야영장, 산림욕장, 물놀이터, 등산로, 산책로, 체력단련시설, 야외교실, 어린이놀이터 등이 있다. 주변에 백제시대 성터인 백령성지가 있고, 6.25전쟁 때 격전지였음을 기리는 육백고지전승탑 등이 있다. 주변에는 금산인삼약초시장, 인삼종합전시관, 태고사, 보석사, 서대산, 칠백의총, 운일암, 반일암 등의 관광지가 많이 들어서 있다.

 

 

태고사는 충청남도 금산군 진산면 행정리에 있는 신라시대의 사찰이다. 대둔산의 해발고도 878m 마천대 능선에 있는 사찰로, 신라 신문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하였다. 원효가 12승지의 하나로 꼽은 명당으로 한때는 대웅전만 72칸에 이르는 웅장한 규모를 자랑했다. 인도산 향근목으로 만든 불상이 봉안되어 있었으나 6.25전쟁으로 소실되었다. 최근에 다시 지은 대웅전, 무량수전, 관음전 등의 여러 건물이 있으며, 이 태고사를 끼고 낙조대에 오르면 대둔산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우암 송시열이 이곳에서 도를 닦으며 쓴 석문이 절 앞 암벽에 남아 있다.

 

 

보석사는 충청남도 금산군 남이면 석동리에 있는 신라시대의 절로 헌강왕 11년인 885년에 조구가 창건하였으며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로 절 앞산에서 채굴한 금으로 불상을 주조하여 보석사라 하였다.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것을 고종 때 명성황후가 중창하여 원당으로 삼았으며,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 ,진영각, 심검당, 산신각, 응향각, 체실, 요사채 등이 있다. 대웅전은 다포집 맞배지붕이며, 법당 내부에는 석가모니불, 관세음보살, 문수보살의 좌상을 모셨는데 정교하고 섬세하며, 상호가 원만하고 자비로워 조선시대 불상 중에서는 극치의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운일암은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 대불리와 주양리 사이에 있는 계곡, 1,125m의 운장산 동북쪽의 845.5m의 명덕봉과 863m의 명도봉 사이에 발달한 계곡으로 길이 약 5km에 이르며 주자천계곡, 대불천계곡이라고도 한다. 깎아지른 절벽에 하늘과 돌과 나무와 그름밖에 보이지 않는다 하여 운일암이라는 이름이 붙여졌고 계곡이 깊어 반나절밖에는 햇빙을 볼 수 없다 하여 반일암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옛날에는 이 길이 전라감영인 전주와 용담현을 오가는 가장 가까운 지름길이었는데 길이 너무 험해 다 가기도 전에 해가 떨어졌다 하여 운일암이라 불렸다고 한다.

 

 

 

<어떤 금전적 지원도 받지않았으며 단순 정보제공을 위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