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는 예술의 도시이며, 패션의 도시, 요리의 도시, 와인의 도시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파리를 시민의 도시라고 하는 이유는 예부터 일부 귀족이나 특권층의 전유물이 아니라 평범한 시민들의 것이었다. 이곳에서는 골목길 어디에서든 시민 누구나 주인 행세를 하며 정답게 대화를 나눈다. 아름다운 뤽상부르 공원에서는 우아하게 피크닉을 즐기며 자유롭게 이 도시를 향유한다.
파리는 혁명의 도시로 예술 분야에서도 많은 혁명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몽마르트에서 예술혼을 불살랐던 이들의 이름을 떠올릴 수 있다. 네덜란드 출신의 화가 반 고흐는 1886년 파리로 와 1년 남짓 이곳에 머물며 새로운 화풍에 세례를 받고 후기 인상파의 거장으로 거듭났다. 화가 뿐만 아니라 시인, 작가, 음악가 등 수많은 예술가들이 파리로 몰려들었다. 그들 중에는 파리의 공동묘지 페르 라셰즈에 고이 잠든 이들이 많이 있다.
정치적으로 혁명의 도시로 프랑스혁명의 시발점으로 시민군이 바스티유 감옥을 함락시킨 사건을 기념해 해마다 7월 14일이 되면 축제가 열린다. 도심을 환히 밝히는 그날의 불꽃놀이를 본 사람이라면 직감적으로 알 수 있다. 시민들에게는 프랑스혁명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나아가고 있다. 파리 시민들은 파엽을 열고 시위도 자주 열고 있다. 정부 시책에 반대하는 노랑조끼 물결이 크게 일렁이고 있다.
파리에는 노트르담 대성당, 몽마르트르 언덕에 우뚝 솟은 사크레쾨르 대성당, 루브루 박물관, 에펠탑, 퐁피두 센터, 오르세 미술관, 나폴레옹 1세의 무덤이 있는 생트 샤펠, 판테온, 툴리르리 공원, 콩코르드 광장, 개선문 등이 인기가 있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성모마리아에게 봉헌된 고댁 건축의 묘미를 제대로 확인할 수 있는 걸작이다. 17세기 바로크 시대와 19세기의 예술품도 모여 있다. 예수가 쓴 가시관, 세계에서 가장 큰 오르간, 웅장한 종소리도 있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프랑스 역사의 산실이다. 18세기 말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자 성당은 수난을 당했다. 혁명의 열기 속에서 많은 예술품이 파괴되었으며 창고로 전락해 버렸으나 나폴레옹이 집권하면서 노트르담은 본래의 위상을 회복했으며, 나폴레옹이 쓰러지자 노트르담은 또 황폐해졌고 1831년 빅토르 위고가 쓴 소설 '노트르담 드 파리'덕분에 국민들로 부터 환대를 받기 시작했다. 노트르담 대성단은 현대사의 많은 사건들을 함께 겪었다.
베르사유 궁전은 태양왕 루이 14세가 지었으며 프랑스인의 자존심을 상징하기도 한다. 18세기 이후 유럽 각국은 이궁전을 모방하는라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다. 18세기가 끝나갈 무렵 시민혁명을 일으켜서 프랑스는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왕정이 무너진 뒤에도 베르사유 궁전은 역사의 주요 무대로 활용됐다. 1919년 제1차 세계대전 종전 후 승전국과 패전국은 베르사유 궁전에 모여 전후 처리를 논의하는 파리강화회의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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