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해외여행

그리스도교가 발생하고 발전한 사해

 

 

사해는 이스라엘과 요르단에 걸쳐 위치하고 있는 염호로 요르단 강이 흘러드나, 물이 빠져나가는 곳은 없고 유입량과 같은 량의 증발이 일어난다. 지구에서 가장 지표면이 낮은 곳이다. 사실 사해는 인근 지역의 가뭄으로 인해 빠르게 사라져가고 있다. 사해의 영적인 본질도 황홀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큰 천연 스파에 둥둥 떠 보는 특별한 경험도 마찬가지다. 사해는 그 공기에도 성경 구절이 스며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사해는 평생 한번 올까 말까 한 기회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 자체만으로 아름다운 한편의 서시시이기 때문에 찾아봐야 한다.

 

 

천연 스파로서의 사해의 기능은 마이크로 기후, 오존이 짙은 공기, 낮은 습도, 높은 증발압력과 기압, 그리고 자외선이 여과된 건강에 좋은 햇빛의 조화이다. 짭찔하고 광물질이 풍부한 물과 머드는 부드러운 "클레오파트라 스킨"을 만들어 준다고 한다. 결벽증이 있어서 물고기와 함께 해수욕을 하는 데에 거부감이 든다면, 사해는 완벽한 공간이다. 요르단과 서안 사이에는 살아 있는 것이라고는 해초뿐이다. 염분은 표면세서 해수의 5배인 200%정도로 생물이 살지 못하여 사해라는 이름이 붙었다.

 

 

사해는 표면 면적 810㎢, 최대깊이 378m, 평균깊이 118m, 대함몰지구대에 있기 때문에 호면은 해면보다 395m 낮아 지표사의 최저점을  기록한다. 이스라엘과 요르단에 걸쳐 있으며 북으로부터 요르단강이 흘러들지만, 호수의 유출구는 없다. 이 지방은 건조기후이기 때문에 유입수량과 거의 동량의 수분이 증발하여 염분농도가 극히 높아 표면수에서 해수의 약 5배인 200%, 저층수에서는 300%이다. 따라서 하구 근처 외에는 생물이 거의 살지 않으며, 사해라는 이름도 이에 연유한다.

 

 

머드를 씻어내고 예리코, 소돔, 고모라 쪽으로 떠가면서 예루살렘의 하늘을 핏빛으로 물들이며 가라앉는 태양을 바라보자. 세계에서 가장 큰 천연 스파라고 했는데, 이제는 인공 스파 "이슈타르"도 있다. 몸이 영혼을 담는 그릇이라고 한다면, 이왕이면 서사적인 그릇으로 하자. 바빌론의 공중정원을 염두에 두고 지은 이슈타르는 바빌로니아의 화려함을 그대로 재현한 듯하다. 바빌론의 공중정원은 신바빌로니아 왕국의 네부카드네자르2세의 재위기간 중인 B.C.605~B.C.562년에 건설되었다. 계단식 발코니 위에 식물을 심어놓은 모습이 공중에 매달려 있는 것같아 붙었다

 

 

사해는 높은 염분 때문에 사람 몸이 뜨기 쉬운 것으로 유명하다. 사해의 해수에는 유용광물이 함유되어 있으며 특히 브롬의 함유량이 많아 보통 해수의 100매나 된다. 그 보급원은 갈릴리호의 바닥에 있는 지하온천일 것으로 생각되며, 이것이 요르단강에 의해 사해로 운반된다고 한다. 사해 주변은 초대 그리스도교가 발생, 발전한 곳으로 유명하며 구약성서에서도 서해가 '소금의 바다'등의 이름으로 나온다. 서안에는 1947년 이후 '사해사본'이 발견된 쿰란 동굴과 로마군이 멸망시킨 유대인의 마사다 성채 유적 등이 있다.

 

 

쿰란은 이스라엘의 사해 북서쪽에 있는 건조한 평원으로 에루살렘에서 차로 1시간 정도의 거리에 있다. 1947년 양치기 소년이 부근에 있는 사막의 동굴에서 성서의 필사본인 사해문서를 우연히 발견한 것으로 유명한 곳이다. 기원전 8세기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하였고, 기원전 2세기에는 유대교의 한파인 에세네파가 공동생활을 하면서 사해문서를 남겼다. 당시의 유적이 남아 있으며 이스라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쿰란 남쪽 약 4.5km 되는 곳에는 샘물이 솟아나며 해수욕시설과 샤워시설, 피크닉시설도 갖추어져 있다.

 

마사다 항전은 A.D.70년대 초에 일어난 유대인들과 로마군의 전쟁으로 유대인들이 로마군에 대항하여 끝까지 항전하였기에 이스라엘의 자긍심과 일체감을 상징하는 역사적 사건으로 불리운다. 마사다 요새를 근거지로 하는 유대 저항군이 로마 정착촌을 급습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 피해가 커지자 로마 보병군단인 제10군단이 마사다 요새 주변에 8개의 진지를 구축한 뒤 공격을 시작했다. 마사다 요새의 성벽이 무너지자 저항군은 모두가 자결하여 오늘날 마사다 유적은 유대인의 저항정신을 반영하는 역사적 현장으로 이스라엘 민족적 자긍심과 단결을 상징한다.

 

 

 

 

<어떤 금전적 지원도 받지않았으며 단순 정보제공을 위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