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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국내여행

안동 갈만한곳으로 도산서원과 병산서원, 학봉종택과 호계서원

 

안동 갈만한곳으로 도산서원과 병산서원이 있으며 학봉종택과 호계서원도 가보자. 안동 갈만한곳인 도산서원은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에 있는 서운으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유학자이자 선비인 퇴계 이황이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제자들에 의해 건립되었다. 현재의 도산서원은 퇴계가 생전에 성리학을 깊이 연구하며 제자들을 가르쳤던 도산서당 영역과 퇴계 사후에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기릭 위해 지은 도산서원 영역으로 크게 나뉜다. 서운 전체의 영역중 앞쪽에는 도산서당 영역의 건물이며 그 뒤편에 들어선 건물들이 도산서원 영역에 속한다.

 

 

안동 갈만한곳인 병산서원은 임진왜란 때 영의정을 지낸 서애 류성룡과 그의 셋째 아들 류진을 배향한 상당이며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사라지지 않고 남은 47개 서원 중 하나로 조선시대 대표적인 유교 건축물로 꼽는 건물이다. 고려 말 풍산현에 있던 풍산 유씨의 사학을 류성룡이 이곳으로 옮겨와 제자들을 길러냈고 제자들이 존덕사를 세우고 류성룡의 위패를 모셨다. 철종 14년인 1863년에 병산이란 사액을 받아 사액서원으로 승격되었으며 많은 학자를 배출해내었다.

 

 

학봉종택은 의성김씨 학봉 김성일이 살았던 건물이다. 김성일은 류성룡과 더불어 퇴계 이황의 고제로 성리학에 조예가 깊었으며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파견되기도 하였으며 1590년에는 통신부사로 일본에 파견되기도 하였으며 임진왜란 때에 경상우도병마절도사겸순찰사를 역임하여 왜적과의 전투를 독려하다가 진주성에서 병사하였다. 운장각은 김성일 선생의 유물관으로 1987년에 개관하였으며 운장이란 저높은 은하수처럼 하늘 가운데서 맑게 빛난다라는 시경의 한 구절에서 취했다.

 

 

퇴계태실은 경상북도 안도시 도산면 온혜리에 있는 이황의 태실로 1454년 이황의 조부인 이계양이 세운 건물로 1501년 이황이 이 집 몸채중앙에 돌출된 방에서 태어났다고 하여 퇴계태실로 부르게 되었다. 특이한 점은 정침 중앙에 전면 1간, 측면 1간반 정도의 누마루와 온돌방으로 구성된 태실이 건물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태실 동쪽에는 노송정과 사당이 있으며 맞은 편에 대문채인 성림문이 있다.

 

 

하회마을은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에 있는 민속마을로 2010년 8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1984년 1월 10일 중요민속자료 제122호로 지정되었으며 민속적 전통과 건축물을 잘 보존한 풍산유씨의 씨족마을이다. 북촌의 양진당과 북촌댁, 남촌의 충효당과 남촌댁은 역사와 규모에서 서로 쌍벽을 이루는 전형적 양반가옥이다. 보물이나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된 가옥은 양진당, 충효당, 북촌댁, 원지정사, 빈연정사, 유시주가옥, 옥연정사, 겸암정사, 남촌댁, 주일재, 하동고택 등이 있다.

 

 

안동 갈만한곳인 호계서원은 학봉 김성일과 서애 류성룡의 서열 다툼으로 인해 대원군이 없애버린 서원이다. 조선 선조 6년인 1573년에 월곡면 도곡동에 여강서원이라는 이름으로 지었으며 퇴계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다가 학봉 김성일, 서애 유성룡 2분의 위패를 함께 모시게 되었다. 숙종 2년에 임금으로 부터 호계라는 이름을 하사받았다. 안동댐 건설로 인하여 1973년 안동시 임하면 임하리에 옮겨 다시 지었다. 현재 퇴계는 도산서원, 학봉은 임천서원, 서애는 병산서원에 각각 위패가 모셔져 있다.

 

 

<어떤 금전적 지원도 받지않았으며 단순 정보제공을 위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