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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해외여행

희망봉을 돌아 인도에 도착한 바스쿠 다 가망의 제로니모스 수도원

 

 

제로니모스 수도원은 리스본의 가장 인기있는 관광명소에서 가까우면서도, 조용하고 평화로운 곳을 원한다면 벨렘 지구에 있는 16세게 수도원보다 더 좋은 곳은 없다. 비록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인근에 있는 안티가 콘페이타리아 데 벨렘의 저 유명한 패스트리를 먹기 위해 몰려가거나, "발견의 기념비"같은 드라마틱한 구조물을 보기 위해 타구스 강가로 가갰지만 말이다. 제로니모스 수도원은 그 고요함을 털끝만큼도 잃지 않고도 호기심 많은 관광객을 다 끌어안을 수 있을 만큼 넓다.

 

 

제로니무스 수도원은 리스본의 역사적인 구역 벨렘에 자리하고 있으며 이 도시에서 가장 훌륭한 역사 유적 중 하나이다. 이 수도원은 15세기의 왕 마누엘 1세의 이름을 따 마누엘린 양식이라 한 고딕, 이탈리아, 스페인, 플랑드르 디자인을 병합한 건축 양식의 걸작이다. 탐험가인 '항해가 엔리크'가 세운 오래된 종교 암자기 있었던 자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1497년 또 다른 탐험가인 바스쿠 다 가마와 그의 부하들이 인도로 출발하기 전 이곳에 머물렀다. 다 가마의 귀환을 기념하기 위해 수도원이 세워졌으며 르네상스 디자인의 요소가 첨가되었다.

 

 

복도와 복도가 서로 얽히며, 시인 페르난두 페소아나 역사학자 알렉산드레 에르쿨라누, 그리고 수백 명의 예로니모회 수사들의 무덤이 있는 방으로 이어진다. 수도원의 지붕 꼭대기에서 눈을 들면 뾰족한 첨탑들이 떠받치고 있는 하늘만이 존재한다. 모든 벽은 순수한 하얀색의 돌로 만들어졌으며,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항해길에 나서는 선원들이 배에 타기 전에 기도를 올리기 위해 들렀다가 발휘한 상상력으로 장식되어 있다. 살아온 이들이 그들의 여정인 타향에서 본 것과 꿈꾼 것을 그린 멋진 회화로 감사를 표시했기 때문이다.

 

 

건축 비용은 동양에서 수입해 오는 특정한 향료에 매긴 세금 5%로 충당되었다. 두명의 포르투갈 왕, 마누엘과 조앙 3세가 수도원 부속 성당에 묻혀 있으며 바스쿠 다 가마도 함께하고 있다. 회랑이 있는 수도원이 성당과 이웃하고 있으며 히에로니무스 수도회 수사들이 살고 있다. 20세기의 시인 페르난두 피소앙이 회랑의 아케이드 중 하나에 묻혀 있다. 1850년 한 차례 증축되었으며 고고학 박물관과 해양 박물관이 있다. 바스쿠 다 가마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타호 강변에 세워진 터다란 벨렘 탑이 있다. 제로니무스 수도원과 벨렘탑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제로니모스 수도원은 이 용감한 모험가들의 정신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으며, 이들의 요정 이야기 중에는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는 장면도 있다. 노아의 방주가 좋은 예인데, 수많은 동물들이 뱃머리를 채우고 있는 고대 선박은 이들이 신세계를 찾기 위해 올랐던 배와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성당에서는 여전히 미사를 올리며, 신도석 뒷자리에 앉아 속삭이는 듯한 포르투갈어 기도문을 듣고 있다 보면 꿈결 같은 졸음에 빠져든다.

 

바스쿠 다 가마는 포르투갈에서 태어났으며 포르투갈은 인도로 가는 뱃길을 찾는 데 다른 유럽 나라들보다 더 열심이었으며 포르투갈의 왕 마누엘 1세는 다 가마에게 그 임무를 맡겼다. 1497년 7월 8일 포르투갈의 리스본 항에서 바스쿠 다 가마와 일행이 인도로 떠났다. 항해에 나선 다 가마는 무사히 아프리카의 희망봉을 지나 케냐에 속하는 말린디 항까지가서 인도의 지리를 잘 아는 아랍인 항해사를 구해 다시 길을 떠났다. 1498년 5월에 다 가마는 인도의 캘리컷 항에 도착했다. 1499년 간신히 포르투갈로 돌아와 귀족의 지위를 받았다. 

 

 

 

<어떤 금전적 지원도 받지않았으며 단순 정보제공을 위한 글입니다>